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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는 성경 66권 가운데 여성의 이름을 책 제목으로 달고 있는 두 권 중 하나입니다. 잘 알다시피 다른 한 권은 에스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에스더는 유대인 고아 소녀가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가 되어 자기 만족을 구한 영웅담입니다. 민족을 구한 이야기이니 널리 전해도 손색이 없기에 당당히 하나님의 책에 기록되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싶은데, 룻기는 일단 모압출신 이방여인이라는 사실이 영 탐탁치 않습니다. 에스더에 비할 바가 못되는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에 그녀의 이름을 단 책이 버젓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이유가 충분이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더 더욱 룻기가 성경책에 기록된 위치를 보면, 사사기 다음에 그리고 사무엘상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사 시대는 200년간 지속되었는데, 안으로는 지파들 간의 갈등으로 인해 싸움이 있었고 밖으로는 블레셋이라는 강력한 나라가 위협해 오는 시기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은 왕의 존재였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왕을 세운 선지자입니다. 왕이 없던 사사의 시대에서 왕을 세운 사무엘상 사이에 룻기가 있는 것입니다. 룻기는 마지막 부분에서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오벳이 태어나는데 룻기의 마지막 절이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룻4:22)로 끝이나는 것으로 보아 룻기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펼쳐 가실 이스라엘의 왕정 시대는 여는 문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을 언급하고 있으니 굉장히 큰 이야기인데, 룻기의 시작은 너무도 작은 한 가정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사사들이 치리 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1) 유다 베들레헴의 한 사람인 엘리멜렉은 흉년을 피해 살려고 모압지방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살려고 왔던 땅에서 엘리멜렉은 죽고 두 아들 말룐과 기룐은 모압 여인들과 결혼하지만 두 아들 역시 죽고 맙니다. 자연재해인 흉년을 피해 왔던 삶의 터전에서 이 가정은 인생의 흉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남은 사람은 나오미와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입니다.(4)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은 모압 땅은 나오미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땅입니다. 성경은 이런 나오미를 “말룐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5) 두 며느리가 분명히 곁에 있는데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나오미는 이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았음을 심정적으로 말해주는 내용입니다. 살려는 기대를 가지고 온 땅에서 전혀 다른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이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라는 뜻인데, 하나님의 사람이 모압지방, 즉 그모스의 백성이라 일컫는 이방민족의 땅에 와서 살다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그러면 창세기12장에서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애굽으로 간 아브라함은, 야곱이 아들들을 데리고 애굽에서 산 것은 뭡니까? 먹고 사는 문제를 간단하게 말하기 편한 것으로 함부로 말하는 것은 신앙적인 언어인듯 하지만 사람의 실존과는 동떨어질 때가 많습니다. 다른 이의 어려움과 곤고함을 불쌍한 마음으로 바라봐 주는 것도 좋은 신앙의 태도입니다. 섣부른 평가보다는 “아이고 불쌍해서 어쩌나 산 사람이라도 잘 견디고 살아야 할텐데” 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더 신앙적입니다.
이제부터 산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자부 오르바와 룻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인생의깊은 상처만 남은 모압지방에서 나오미에게 들려오는 고향 베들레헴에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두 며느리와 함께 유다 땅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6절과 7절의 말씀에 보면 “두 며느리와 함께,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나오미는 유다 사람이니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모압 여인들이 두 자부에게는 자기 고향을 떠나야 하는 중차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를 스스로 따라 나섰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흉년 가운데 만난 귀한 관계입니다. 나오미는 함께 하는 두 며느리에게 자신들의 어머니집으로 돌아가라 권합니다. 8-9절을 보시면 나오미는 자부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이 드러납니다.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노라 9절에서는 각각 새로운 남편을 만나 위로를 얻고 살기를 권합니다. 나오미는 룻과 오르바의 장래를 생각하며 그들을 축복합니다. 자부들을 위한 축복에서 두 가지를 기억했으면 합니다. 하나는 선대입니다. 선대하다는 말은 ‘헤세드’로 사랑과 충절이 결합된 말입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이 두 며느리에게 헤세드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헤세드는 상대의 반응과 무관하게 사랑의 대상에게 자신을 얽어매는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이 가시 돋친 말을 해도, 당사자를 사랑하는 것이 헤세드입니다. 헤세드의 사랑의 균형이나 대등함이나 공평함이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고 우리도 서로 그렇게 사랑해야 합니다. 왜 자부들에게 이런 하나님의 헤세드의 축복을 말하는 가? 삶이 변덕스럽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또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삶이 바뀔지 모르는 것입니다. 자부들은 이미 룻에게 먼저 이 사랑으로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대하시기를 원하며”(9)라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축복은 9절에 “각기 남편이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입니다 위로는 안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안식은 샬롬입니다. 자부들의 인생가운데 하나님의 안식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나오미는 참 단단한 사람입니다. 믿음이 돋보이는 사람입니다. 나오미 자신을 위해 필요한 두 자부가 아니라 며느리의 인생 자체를 긍휼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매우 강인한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두 자부의 미래를 열어주고 있습니다. 나오미의 사랑 헤세드를 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두 자부의 태도가 10절입니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라고 여전히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나오미와 두 며느리는 인생의 가장 큰 흉년을 만났습니다. 그 큰 흉년 앞에 독기 가득 품고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타인의 도움을 얻어 내 인생길을 평안하게 할 것인가에 있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큰 인생의 훙년 앞에 서로의 인생에 대해서 선대하고 위로, 안식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모압지방에서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결코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있는데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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