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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게시판

2026.8.26룻기강해(2)/사랑의 사람, 룻(1:11-18)
2026-08-26 18:38:17
김유현 위임목사
조회수   16

나오미의 두 며느리에게 하는 말이 <돌아가라> 입니다. 이방여인들인 두 며느리가 가서 살 베들레헴에서의 생활이 녹녹치 않음을 알기에 모압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매 순간 수모와 조롱을 견뎌야 하기에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오미 자신의 처지를 설명합니다. 당시의 유대의 결혼제도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대를 잇는 것이 결혼의 목적이자 존재의 이유였는데, 그러기에 남편이 아들을 낳지 못한 채 죽었다면 여자는 시동생을 통해서라도 아들을 낳아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혼자 남은 여자의 생존과 생계가 보장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창세기38장에서 유다의 며느리 다말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11절에서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11) 이 말은 12절에서는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내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고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계대결혼) 왜? 돌려보내기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돌아가라는 강권함은 오직 두 자부를 위한 일입니다. 나오미의 입장에서 두 자부에게 도움을 받아 살아간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라 하는 이유는 두 며느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당한 삶의 비극을 더 이상 두 며느리가 지기를 싫어한 것입니다. 나오미는 여호와의 손이 자기를 치셨다(13)고 말합니다. 두 며느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니오미는 사랑의 사람입니다. 자신의 삶의 비극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본래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비극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은 것일까요? 아니면 전혀 예기치 않은 삶의 비극과 고난을 견디면서 사랑을 배운 것일까요? 여러분 사랑은 관념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신 앞에 펼쳐진 새로운 삶의 상황을 잘 견딜 때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근동의 전통의 문화 속에서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기에 등장하는 나오미와 룻은 삶의 고통이라는 사실 앞에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사랑을 배우고 익힌 것입니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려는 나오미의 마음이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가장 애통하는 자리의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애통함을 끊어내려는 나오미의 의지이며 사랑입니다. 나오미의 이런 강권은 자신을 향한 두 며느리의 사랑 때문에 더욱 단호한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새로운 위험에 자신을 넉넉히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간곡한 부탁으로 며느리 오르바가 돌아갑니다. 여기서 우리가 돌아간 오르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 안주형 인물이라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9절에서 그들이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 14절에서도 울었습니다. 함께 애통해 하는 며느리들입니다. 강권적으로 돌아가기를 요청하는 나오미의 부탁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단지 오르바의 이야기가 없을 뿐입니다. 오르바에 대해서 나의 섣부른 가치 평가는 위험합니다. 시어머니의 강권과 설득에 오르바는 순종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오르바의 이야기는 더 이상 없습니다. 성경은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있을 뿐입니다.

룻은 오르바와 다른 선택을 합니다.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14) 다시 나오미는 설득해야 합니다. 15절을 보니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앞서 설득은 나오미의 처지를 말했다면 이번에 룻을 설득하는 논리는 그의 백성, 그의 신, 을 언급합니다. 신과 인간과 땅을 언급함으로 고대 문화의 관점으로 말을 합니다. 룻은 이런 나오미의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오미에게 말하는 장면이 16-17절의 말씀입니다. “저는 어머니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같이 하겠습니다.”라고 간단하게 말해도 될 터인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룻은 모압이라는 자신의 태생적 한계를 이미 벗어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거기서 드러나는 사실이 무엇이냐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16),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17) 그 모든 상황에서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룻은 자신의 정체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잘 들어보시면 나오미를 곁에서 섬기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오미의 삶 전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룻은 나오미와 함께 살면서 남편을 잃었지만, 상실의 자리를 채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16) 룻이 보여준 나오미를 향한 사랑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랑을 인간관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 사랑은 하나님이십니다. 부부도 자녀와의 관계도 모두 그 관계 안에 하나님이 계셔야 진정한 사랑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룻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삶의 부수적인 요인이나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룻은 모압에서 이루어진 모든 관계를 버리고 가장 자신의 삶에서 남편이 죽은 것보다 더 위험한 자리인 유대 땅으로 가는 것을 망설이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신 나오미를 섬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자신의 인생을 바꾼 하나님이시기에 수동적인 따름이 아니라 적극적인 하나님을 따르는 여정이 된 것입니다. 나오미가 생각한 룻을 향한 배려와 사랑을 룻이 완강하게 거부한 것은 나오미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순종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롯이 보여주는 나오미에 대한 사랑은 자신을 좁히고 제한 하는 사랑이 아니라 넓고 커가는 사랑을 보여주십니다.나오미에게 있어서 룻은 나오미의 애통함/ 고난, 슬픔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나오미는 룻의 헌신과 사랑에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엄청난 헌신과 사랑을 알고 이해하려면 하나님께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나오미의 생각을 접어야 합니다. 더 이상 자신의 생각으로 룻을 생각한다고 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나오미와 룻은 함께 합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삶의 에너지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얻는 것입니다. 그래야 두 사람의 관계의 더 발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나오미도 룻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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